디즈니의 잠자는 숲속의 공주(1959)는 사실 페미니즘 영화다.
옛날에 쓴 글이 생각나서 좀 더 써보고 싶었다.
이 글을 쓴 당시에는 디즈니 클리셰를 단지 "수동적 여성상"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심연이란 참 깊은 것이었고 엘사와 안나가 클리셰를 깼다는 평가의 참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오늘 쓰고 싶었던 글은 가장 수동적인 공주가 등장하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 대한 것이다.
디즈니의 1959년 작품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따지고 보면 통념과는 달리 사실은 페미니즘 영화다. 사람들은 잠만 자는 공주를 왕자가 깨워서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게 된 가장 수동적인 여성상이라 폄하하면서 이를 구시대적 이야기라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올바른 비판이 아니다. 이 작품은 요정 아줌마들이 힘을 모아 오로라와 함께 고난을 극복한 위대한 여성 연대 서사다.
일단 여성인 말리피센트가 사고를 친다. 강하니까 사고도 크게 칠 수 있다. 왕도 왕자도 시종도 어느 남자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쩔쩔매는데 요정 아줌마들이 일을 해결해주겠다고 한다. 역시 모든 큰 일은 여자가 한다. 남성인 왕은 무능했다.
그렇게 요정 아줌마들이 오로라를 맡아서 보호해준다. 그러다가 오로라가 저주 때문에 잠에 빠지는데. 왕자가 지나가다가 오로라를 발견한다. 요정 아줌마들은 자기들은 남을 해치는 마법을 쓸 수 없어서 말리피센트에 대항할 수 없다고 왕자에게 도움을 청한다. 요정이 힘이 없어서 도와달란 게 아니었다. 그러고는 요정아줌마들은 왕자에게 말리피센트와 싸우라고 마법의 힘으로 칼과 방패를 만들어준다. 왕자는 말리피센트를 찾아간다. 말리피센트는 용으로 변신해서 왕자를 공격하는데 왕자는 그 공격을 피하는데 급급하고 아무런 공격을 못한다. 그러다가 왕자는 쓰러지고 칼을 떨어뜨린다. 그걸 보다 못한 요정 아줌마들는 마법으로 칼을 띄운 뒤에 날려서 말리피센트의 가슴을 뚫는다. 말리피센트는 그렇게 칼침 맞고 사망한다. 디즈니 답게 절벽에서 떨어졌는 지는 기억이 안 난다.
필립은 오로라를 구원한 영웅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공주는 잠만 자고 왕자는 칼을 운반만 하고 무능하기는 둘 다 도토리 키재기.
요약:
칼 만든 사람: 요정 아줌마들
칼 운반한 사람: 왕자
칼로 용을 해치운 사람: 요정 아줌마들
자 이제 누가 영웅이지?
하지만 아직 소소한 반격이 남아있다.
1. 세 요정은 요리, 청소, 바느질 등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는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2. 결국 오로라 공주는 필립 왕자와 결혼하여 행복을 찾는다. 이는 여전히 여성의 행복이 남성에게 의존한다는 전통적인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받아칠 수 있다.
1. 요리, 청소, 바느질은 특정 성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요정 아줌마들이 이러한 일을 하는 모습은 단순히 전통적인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노동이다. 여자끼리 모여 사는데 아무도 요리 청소 바느질을 안 하면 누가 대신해주겠는가?
2. 왕자와의 결혼이라는 결말도 거꾸로 보면 여성 의존적 결말로 볼 수도 있다. 왕자는 오로라 공주와 결혼해서 행복을 찾는다. 이는 남성의 행복이 여성에게 의존한다는 페미니즘의 관점을 잘 보여준다. 그 왕자는 따지고 보면 불쌍한 사람이다. 왕자면 결혼할 예쁜 여자들도 많았을 텐데 얼마나 외로웠으면 숲에서 자고 있는 여자한테 빠져서 용하고 싸울 생각까지 했을까? 사실상 자살행위이나 다름없는 결정을 했던 불쌍한 사람이었는데 결국 오로라에 의해서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