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

소프트웨어 기업 수익모델의 근본적 변화와 온디바이스 인공지능

누미 2024. 3. 1. 16:15

과거에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여 소비자들에게 판매했다. 한번 개발해 놓으면 복사해서 팔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고정비용은 크지만 한계비용은 디스켓 또는 CD 가격이라는 식의 설명을 하곤 했다.

이때는 소프트웨어를 한번 팔면 끝이었다. 업데이트가 간간히 있었지만 새로운 기능을 넣는게 아니라 버그픽스였다. 구버전을 갖고 있다고 해서 신버전을 무료로 제공받은 건 아니었다. 신버전이 필요하면 새로 돈을 내고 신버전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야 했다.

이는 영어 강사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영어회화 교재를 집필한 후에는 인쇄만 하면 추가적인 노력 없이도 소비자들에게 팔아서 돈을 벌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독자들은 개정판이 나왔을 때 구판을 계속 볼 수도 있고 신판이 보고 싶으면 새로 사야 한다.


그러나 이후에는 소프트웨어 수익 모델이 변화하여, 한 번에 큰돈을 받는 대신 구독형 요금제가 보편화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나 어도비의 그래픽 관련 툴 같은 대중적인 소프트웨어도 구독형 요금으로 전환된지가 이미 몇 년이 지났다.

현재, 구독 기간 동안 제품의 기능은 지속적으로 개선되며 버전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며, 이는 버그 픽스에서 버전 업그레이드로 업데이트의 성격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소프트웨어 기업의 한계 비용은 디스켓 가격이 아니라 지속적인 개발비와 유지 수선비로 변화하였다.

이를 영어강사의 예로 비유한다면 그가 영어회화 정기간행물을 발행하여 판매하는 것과 비슷하다. 구독기간 중에 강사는 계속해서 컨텐츠를 만들어야 하고 독자는 기간 중에 간행물을 계속 배달받는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서비스가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가장 크게 성장할 영역으로 각광받고 있다. 전통적인 영역에서는 어도비의 파이어플라이나 오피스365의 코파일럿을 예로 들 수 있고 새로운 영역에서는 챗지피티나 미드저니 같은 생성형 AI 서비스를 꼽을 수 있다.

AI와 관련된 새로운 영역은 기존의 사업모델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기존의 사업모델은 제품 한 개를 추가로 판매할 때마다 들어가는 한계비용이 0에 가까웠다. 그러나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서버 측에서 컴퓨트 파워를 쓰기 때문에 제품을 제공할 때 막대한 직접 비용이 든다.

이는 영어강사가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을 고용해서 전화영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비용 구조가 비슷하다.

 

생성형 AI서비스 제공업체들은 종종 답변의 내용을 검열한다. 이는 아마도 답변 내용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것을 AI 업체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검열 대상은 위험한 것, 잔혹한 것, 성적인 것,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 운영자의 신념에 반하는 것 등이다. 업체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인공지능 모델을 자기 컴퓨터에 다운로드 받아서 로컬로 인공지능을 구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대체로 스테이블 디퓨전으로 야한 그림을 그리기나 AI챗봇으로 음란채팅이나 야한 소설을 쓰는 것이다. 내용 자체는 별 것 아니지만 겨우 그 정도 일도 로컬로 하려면 전기를 300와트 이상 사용하는 고성능 그래픽카드가 필요하다. 게다가 그렇게 큰 비용을 들이더라도 인공지능의 요구사양이 워낙 높아서 마음껏 구동하지 못한다. 로컬로 구동하는 인공지능 모델의 성능은 온라인 업체가 제공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조악하다. 그러나 그 정도 모델을 쓰더라도 여러 옵션들에 제약을 두어 시스템 자원을 절약하고 오랫동안 기다려야 겨우 결과물을 볼 수 있다. 인공지능을 구현하는데 현재로서는 이렇듯 막대한 자원이 필요하다.

 

우리는 형편없는 성능의 고물 스마트폰으로도 AI 업체의 서비스를 원활히 사용할 수 있지만 동시에 AI 업체의 데이터센터에서는 엄청난 GPU들이 막대한 전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오픈AI는 GPT4를 이용할 때 1000 토큰당 소요되는 비용을 추정하여 공개한 바 있다. 답변은 6센트 질문은 3센트로 추산한다. 토큰이란 인공지능이 언어의 의미를 구분하는 단위로 형태소와 비슷한 개념인데 1000 토큰은 약 750 단어의 분량이다. 만약 질문과 답변에 모두 1000 토큰씩 사용된다면 소요되는 비용은 9센트 정도로 추산된다. 그러나 매번 750 단어짜리 질문을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내 경험으론 글을 리뷰하게 하는 것 같은 특별한 요구가 아니라면 그 정도로 긴 질문을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답변은 평균적으로 150 단어 내외였고 250~300 단어가 넘으면 답변이 여러 개로 나눠서 출력이 되었다. 이를 근거로 추측해 보면 GPT4를 이용해서 질문을 하나 처리하는데 오픈AI가 추산하는 비용은 평균적으로 대략 1.5센트 정도로 볼 수 있다. 한 사람이 매일 질문을 10개 정도씩 던지면 오픈AI가 한 달에 지출하는 비용은 대략 4.5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이는 결코 만만한 비용이 아니다. 그래서 오픈AI나 미드저니 같은 업체들은 구글 같은 기존의 무료 플랫폼 업체들과는 달리 일찌감치 서비스를 유료화한 것으로 보인다.

영어강사의 예시로 보면, 그가 홍보 목적으로 자기가 쓴 책의 일부를 모든 사람에게 PDF파일로 배포하는 건 가능하다. 그런 건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홍보 삼아 전화 영어 맛보기 서비스를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서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새로운 사업모델은 불법복제를 원천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작업을 백엔드에서 처리하기 때문이다. 영어회화 교재나 간행물은 복사해서 볼 수는 있지만 전화영어 서비스는 불법복제가 불가능하다.

 

기존의 구독형 소프트웨어는 모든 기능이 클라이언트에 설치된다. 그리고 그 소프트웨어를 실행하면 개발업체 서버에 로그인해서 프로그램의 사용권을 얻어 프로그램이 실행된다. 불법복제자가 사용하는 크랙은 로그인을 해서 프로그램의 사용권을 얻는 단계를 우회하여 클라이언트에 설치된 기능을 실행시킨다. 그래서 구독형 소프트웨어라고 하더라도 불법복제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관련한 새로운 사업 모델은 소프트웨어의 핵심 기능이 클라이언트에 설치되지 않고 업체의 서버에서 실행되므로 복제방지를 우회하는 크랙을 해봤자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

 

한국의 게임 회사들은 이와 유사한 비즈니스모델인 온라인게임을 일찌감치 정착시켰다. 한국의 게임 산업은 초창기에 패키지 게임 중심이었지만 불법복제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한국 게임 산업이 온라인 중심화가 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국내 게임사의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게이머의 컴퓨터가 게임 회사의 서버에 연결해야 했다. 클라이언트 프로그램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게임회사의 서버는 여러 유저들을 연결해 주고 자원을 배분하고 사냥감과 이벤트를 제공했다. 게임은 한번 파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달마다 이용료를 받았다.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회사도 막대한 유지비를 지출했기 때문에 한번 개발하면 이후 디스켓 값만 나간다는 기존 소프트웨어 수익 모델과는 일찌감치 다른 모습을 보였다. 온라인 게임사에게 지불하는 월정액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극소수 프리서버가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라인 게임을 불법복제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새로운 사업모델에서 불법복제가 곤란해지는 데에는 이런 기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이유도 있다.
애초에 소프트웨어에 돈을 지불할 의사가 없는 사람들은 소프트웨어를 패키지로 판매하든 구독형으로 판매하든 상관없이 자신들의 방법을 사용해서 불법복제를 했다. 빛을 내는 등잔의 불을 내 양초에 옮겨도 등잔의 불이 어두워지지 않듯 불법복제를 하더라도 소프트웨어 개발사의 비용이 증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는 절대 그 소프트웨어에 돈을 쓸 의사가 없으므로 나의 행위는 소프트웨어 개발사의 매출과 비용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생각도 가능하다. 그 때문인지 일반적인 물건은 절대로 훔치지 않는 사람도 불법복제는 큰 죄의식 없이 저지르곤 한다.
하지만 나의 불법복제가 공급자에게 인공지능 서버의 연산 증가 같은 추가적인 운영경비를 지출하게 한다면 그것은 공급자에게 명백하게 피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니 죄책감을 느끼고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BMW는 얼마 전에 한 달에 2만원 정도 구독료를 내야 카시트나 핸들의 열선을 켤 수 있는 정책을 발표했다가 엄청난 비판을 당하고 철회했다. 구독료가 얼마인지 여부가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아마 한달에 2천원을 청구한다고 해도 반응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한편 테슬라는 자율주행 기능에 대한 구독료를 한달에 200달러 가까이나 받지만 그것에 대한 비판을 찾기는 어렵다. 둘 다 구독료를 받지만 이에 대한 소비자의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테슬라의 구독료는 일방적인 매출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에 따른 통신비용나 인공지능 서버 운용 같은 비용을 테슬라 측도 지출한다. 때문에 구독료는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받아들여진다. 반면에 BMW의 사례는 이미 만들어진 열선 이용을 방해하여 돈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갈취로 여겨져서 비난을 당한다.

만약 테슬라의 자율주행을 공짜로 이용하는 방법을 해킹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테슬라의 자원을 도둑질하는 범죄자라고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BMW의 열선시트를 해킹해서 구독료를 지불하지 않고 켜는 방법을 공개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소비자들로부터 응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온디바이스 인공지능 사업모델을 만들 때 중요한 시사점이 될 수 있다. 온디바이스 인공지능은 서버와의 연결 없이 클라이언트의 능력만으로 구동되기 때문이다. 온디바이스 인공지능의 장점은 개인화, 보안성, 짧은 응답시간이다.

--앞서 살펴봤던 음란채팅에 사용되는 로컬 인공지능도 일종의 온디바이스 인공지능이다. 그 로컬 인공지능은 서버 측의 검열을 피하는 목적(개인화) 이외에도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을 온라인으로 유출시키지 않는 장점(보안성)이 있다.--

 

인공지능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온디바이스화 되려면 개별 단말기의 처리능력이 향상되고 배터리 소모도 크게 줄여야 한다. 자율주행은 인공지능을 온디바이스화 하기에 적합한 제품이다. 자동차는 대용량 배터리를 사용하므로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서는 다소 자유롭다. 순간적인 상황에 대응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짧은 응답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자율주행에는 빠른 통신기술과 거대한 트래픽을 감당할 통신 시설이 필요한데 온디바이스화 시키면 이런 비용들이 불필요해진다. 개인의 동선이 자동차 회사에 저장되는 사생활 유출도 자율주행 기능을 온디바이스화 시키면 방지할 수 있다.

 

자율주행을 온디바이스화 하면 이렇듯 장점이 많이 있지만 자동차 제조사 입장에서는 그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앞선 예시에서 BMW는 열선에 대해 구독료를 받으려 했다가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자율주행 기능을 온디바이스화 한다면 그건 별도의 외부 지원 없이도 작동하는 자동차에 내장된 기능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구독 시스템은 이미 자동차에 내장되어 있는 기능을 회사가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자율주행 기능이 온디바이스화 된다면 BMW의 열선 문제처럼 자동차 회사가 소비자에게 구독료를 요구할 근거가 약해진다. 구독료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면 자율주행 기술에 대한 추가적인 투자에 대한 재원과 필요성이 작아지기 때문에 기술 발전이 늦춰질 우려가 있다.

 

온디바이스 인공지능은 많은 장점들이 있다. 클라이언트쪽에 고성능 사양의 디바이스을 요구하는 진입장벽이 있지만 이는 기술 발전을 통해 장기적으로 결국은 극복될 문제로 보인다. 한편 최근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제품을 인공지능화하고 기능을 백엔드에서 실행하게 하여 그간 업계의 고질적 문제였던 불법복제에 대한 승기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업계내에서는 매우 고무적인 일일 수 있지만 온디바이스 인공지능 기술이 보편화된다면 업계는 과거의 고질적인 문제에 다시 빠지게 될 위험이 있다. 이런 문제를 소프트웨어 업계가 장차 어떻게 극복할지가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