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베이즈 추정과 '될 놈 될'

누미 2020. 10. 18. 10:05

베이즈 추정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니콜라스 나심 탈레브의 '행운에 속지 마라'였다. 그 이후에는 조던 엘렌버그의 '틀리지 않는 법' 등 다른 책들에서도 종종 보곤 했다. 주로 감염률과 오진률로 예를 들어 설명되곤 했던 것 같은데 읽는 당시엔 명쾌하게 이해했지만 피부에 와 닿지 않아서인지 시간이 지나면 그 원리를 종종 잊어버리곤 했다.

예시란 껍데기에 불과하지만 어떤 껍데기를 쓰는지에 따라서 기억하기가 쉬워진다면 쓸만한 예시를 만들어서 기록해 둘 필요가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 글을 남기게 되었다.

 

그런 예시를 만들기 위해 두 가지 가정을 하겠다.

1. 상당한 매력남이 있다. 이 남자를 접한 여성 중에서 90%는 반해버린다.

2. 여자가 이성과 이야기 할 때 상대에게 호감이 있으면 눈을 맞추고 호감이 없으면 눈을 맞추지 않을 확률이 70%이다.

 

이러한 가정 하에서 어떤 여자가 그 매력남과 계속 눈을 맞추며 대화를 했다. 그 여자가 남자에게 호감이 있을 확률은 얼마일까? 70%라면 굳이 원리를 기억하기 위해 이런 글을 남길 필요가 없다.

 

일단 대화를 할 때는 눈을 마주치는지 여부와 그 이유에 대하여는 4가지 경우로 나눠진다.

① 호감을 느껴서 눈을 마주친다.     →          0.9 × 0.7 = 0.63

② 호감은 느끼지만 눈은 마주치지는 않는다. →   0.9 × 0.3 = 0.27

③ 호감은 없지만 눈은 마주친다.    →            0.1 × 0.3 = 0.03

④ 호감이 없어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      0.1 × 0.7 = 0.07

 

*주) 얼핏 생각했을 때 이 부분이 약간 혼란을 느낄 수 있는데  '호감이 있으면 눈을 맞추고 호감이 없으면 눈을 맞추지 않는다'는 가설의 정확도가 70%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예를 들어 호감은 없지만 눈을 마주친다라는 상황을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다.
호감이 없으면 눈을 맞추지 않는다는 가설의 정확도가 70%이고 호감은 없지만 눈은 마주치는 상황은 이 가설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은 30%의 경우이다. 그 매력남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10%이다. 그 매력남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눈은 마주치는 경우는 전체 경우의 수에서 본다면 30% × 10%인 0.03만큼의 비율이다.

 

 

 

여자와 남자가 눈을 맞추는 확률은 호감이 있을 경우와 호감이 없을 경우에서의 합계인 ①0.63 + ③0.03 = 0.66이다.

매력남과 여자가 눈을 맞춘 사건이 발생했음을 전제로(0.66) 여자가 남자에게 호감을 갖고 있을 확률은 0.63을 0.66으로 나눈 값인 약 95%이다

 

무작위 상태라면 확률이 70%였는데  90%라는 이 남자만의 사전 확률이 추가되자 실제 확률은 95%로 25%p나 높아졌다.

이 남자 입장에서 본다면 눈을 맞춘 사건을 경험함으로 인해서 그 여자를 유혹했을 때 실패할 확률이 아무 정보도 없었던 상태인 10%에서 5%로 절반 가량 낮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단 1%의 여성에게만 매력을 유효하게 어필할 수 있는 극단적 비호감남을 위의 매력남과 대조해 보겠다. 어떤 여자가 그와 대화할 때 눈을 맞췄다면 그 여자가 그에게 호감을 가졌을 확률은 같은 원리를 이용하여 계산할 수 있다.

(0.01×0.7) ÷ (0.01×0.7 + 0.99×0.3) ≒ 2.3%

 

비록 유혹 성공 확률은 1%에서 2.3%로 2배 이상 크게 상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절대값이 크지 않고, 실패 확률은 99%에서 97.7%로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어 보인다.

 

비호감남 입장에서 여성이 자신과 눈을 맞추며 대화를 하는 것은 매력남의 경우와 비교했을 때 드문 경험이다.

매력남은 여자와 대화할 때 66%의 확률로 여자가 눈을 맞추지만 비호감남의 경우는 30.4% 확률로(≒ 0.01×0.7 + 0.99×0.3) 여자가 눈을 맞추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드물게 겪은 여성과의 눈 맞춤을 귀중한 경험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단지 여성이 이성적 호감을 느껴서라기보다 예의상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97.7%에 이른다. 그럼에도 비호감남이 1%라는 자신의 사전 확률을 간과하고 눈맞춤을 단순히 호감에 대한 70%의 가능성으로 오인하여 왜곡된 용기를 낸다면 그것은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게 될 위험이 매우 크다.

 

두 남자는 눈맞춤이라는 같은 사건을 겪었음에도 사전 확률이 다른 각 당사자들이 마주하게 되는 유혹 성공 가능성은 95%와 2.3%로 크게 다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될 놈 될'이다.

 

한편 매력남이 아이컨택을 하지 못한 경우에 여자의 호감 가능성도 계산해 볼 수 있다. 여성이 남자의 눈을 바라보지 못한 상황은 두 가지 경우가 있다.

② 호감은 느끼지만 눈은 마주치지는 않는다. → 0.9×0.3 = 0.27

④ 호감이 없어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 0.1×0.7= 0.07

 

눈을 마주보지 않은 상황에서 여자가 매력남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은 아래와 같이 계산된다.

0.27 ÷ (0.27+0.07) ≒ 79.4%

매력남은 자기에게 별 관심이 없어보이거나 거절한 34%에 대해서 '튕기니까 더 예쁘군' 이라고 생각하면서 몇 번 더 접근하여 아직 얻지 못한 27%를 챙길 수 있다. 승률이 80%가까이 되니까 해볼만한 일이다. 열 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속담은 이런 사람에게 해당된다.

 

매력남은 상대 여성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어도 눈을 마주친 비호감남에 비하여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유혹 성공 가능성을 가진다. 비호감남이 매력남에게 "우리랑 그 여자랑 이야기할 때 그 여자가 신기하게도(30.4% vs 66%임에도 불구하고) 너 말고 나만 쳐다보더라. 웬일일까?"라고 물으며 마음이 들뜨더라도 그가 원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은 2.3% vs 79.4%로 매우 희박하다.

'될 놈 될' 그리고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현상의 원리가 수학적으로 증명된 셈이다.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오해였다는 경험을 많이 겪었다면 자기 매력이 시원찮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추정할 수 있다. 반대로 상대가 자기를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알고 보니 좋아했었다는 경험이 많다면 자신의 매력이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기억해 두면 유용할 것 같은데 자꾸 잊어먹는 원리라서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했다. 기억이 잘 나는 예시를 만들려다가 개념에 혼돈이 와서 그림까지 끄적대며 다소 헤매면서 결과를 내 보니 좀 더 명확히 이해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