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동물농장 원서 완독

누미 2020. 4. 26. 22:20

이 글은 동물농장에 대한 독후감이 아니고 최초로 영문 소설을 완독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기록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서 영어를 못하는 편이다.

영어를 잘하고 싶었다. 남들보다 열심히 한 건 아니지만 남들 하는 만큼은 공부했었는데 결국 잘 못하는 상태로 남았다.

영어는 다음 생애에 미국인으로 태어날 때나 잘하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영어와 담을 쌓은지 꽤 오랜 세월이 지났다. 영어와 담을 쌓고 나서는 한국어로 된 글을 읽는데만도 시간은 모자랐다. 그러나 영어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최근에 다시 들게 되었다.

 

나름의 방법으로 영어를 잘하게 된 사람들의 경험을 알아보니 시험용 공부보다는 자기가 재미있는 책을 원서로 읽는데서 시작한 케이스들이 눈에 띄였다. 리스닝, 스피킹, 라이팅을 잘하기 위해서는 결국 리딩을 잘해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일단 리딩부터 마스터해야 하는데 리딩은 재미를 느끼는 책을 많이 읽으면 된다라는 것이 요지였다. 톰클랜시의 밀리터리 소설을 읽었다고도 하고 판타지 소설 또는 싸구려 연애소설을 읽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몇 년 전에 영어를 공부하고 싶어서 구입했던 책이 2권 있었다. 첫번째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원문 옆페이지에 해석이 달림 헌책 1400원)이었고 다른 하나는 동물농장(최소의 가이드가 달린 학습서, 헌책 5700원)이었다. 제인오스틴은 엄청난 만연체를 구사하는 작가인데 6, 7줄 정도로 늘어지는 문장이 한 페이지에 2개 이상씩 보이곤 했다. 첫번째는 부유한 남자는 아내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아주 유명한 문장이었고 쉽게 해석이 되었다. 그런데 두번째 문장에서 막혔다. 모르는 단어가 없어도 해석이 불가능한 깜깜한 문장이었고 한참 끙끙대다 포기했다.

동물농장은 사놓고 몇페이지 보다가 나중에 언젠가 읽어야지 라는 마음만 갖고 몇 년을 묵혀놨었다. 그러다가 최근 영어를 잘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고 좋아하는 책을 읽어서 영어를 잘하게 된 사람들의 경험담까지 접하면서 완독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는 형님과 온라인 스터디를 하게 되었다. 특별한 계획이 있는 스터디는 아니고 하루에 한챕터씩 읽기로 한 약속이었다. 그래서 열흘만에 다 읽었다.

 

핸드폰 사전을 쓸 경우 집중력이 떨어질까봐 잠들어있던 전자사전을 깨워서 썼다. 오직 한영 영한 영영사전과 사칙연산 계산기 기능만 있는 카시오 ew k500이라는 모델이다. 구입한지는 대략 15년 쯤 된 것 같은데 최근 10년간은 쓸 일이 없었던 물건이다. 첫 일주일 정도 잘 사용하다가 방향키가 잘 안눌러져서 멤브레인에 접점부활제라도 뿌려주려고 분해했는데 그 과정에서 하판이 꽤 많이 부러졌다. 오래되어서 플라스틱이 삭았는지 힘을 조금만 줘도 삶지 않은 소면처럼 부러져 나갔다. 어쨌든 접점부활제 뿌리고 재조립했는데 키 입력이 훨씬 더 나빠져서 쓸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접접부활제를 전자기판에 뿌렸을 때 결과는 대체로 좋지 않은 편이고, 교각살우 한 것 같다. 그런데 결국 그건 다행이었다. 핸드폰으로 네이버 사전을 써보니 숙어 찾기가 훨씬 편했고 과거형을 입력해도 원래 뜻이 융통성있게 연결되었다. 지금 쓰고 있는 폰을 쓰기 보다는 옛날에 쓰던 베가r3을 영어사전 전용으로 재활용해서 사용하게 되었다. 옛날 폰은 반응속도가 느려서 웹서핑이나 딴짓을 할만한 욕구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배터리도 3개나 있어서 네이버 모바일 페이지가 더 무거워지지만 않는다면 꽤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다. 기변 직후 아직 경제적 가치가 남아있을 때 그 폰을 중고로 처분하지 않았던 이유는 나름 사연이 있으나 글이 더 이상 길어지길 바라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