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나에게 주는, 내게서 받은 선물

누미 2018. 1. 3. 14:33

몇 달 전 꿈에서 아이스크림을 한 보따리 사다가 냉장고에 쟁여놨던 적이 있다.

오늘 꿈인 줄 모르고 깨어났다. 꿈 답지 않게 몇 달 전과 연속성이 있었던 것 같다.  배가 고파서 그 때 쟁여놨던 아이스크림을 아침 삼아 먹으러 부엌에 갔다.

부엌에는 할머니가 절구에 굵은 소금을 빻고 계셨다.


일년에 두세 차례씩 꾸는 할머니 나오는 다른 꿈들과는 달리 오늘은 할머니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걸 처음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할머니를 부른 후 반가워서 끌어 안았다. 마지막 기억보다는 좀 더 젊은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돌아가실 당시보다 키가 약간 크게 느껴졌다. 할머니가 조금 젊은 모습으로 오셔서 키가 커졌다는 얘기와 반갑다는 인사를 몇 마디 했다. 느낌이 아주 생생해서 더 기뻤고 눈물이 났다. 살면서 한번도 흘려볼 기회가 없었던 "기쁨의 눈물"을 꿈속에서 처음 흘린 셈이다. 십여년 만의 이산가족 상봉은 길지 않았고 금방 잠에서 깨어났다. 잠깐이었지만 충분히 기뻤기 때문에 좀 더 오래 꿈꾸지 못한 게 아쉽지는 않았다.


깨고 나서 생각했다. 꿈에서 만난 할머니는 혼령이 꿈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나의 뇌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나는 그 허상으로 현실에서는 한번도 흘려본 적 없는 기쁨의 눈물까지 경험했으니 현실의 어떤 기억보다도 훨씬 큰 기쁨을 맛본 셈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당시보다는 좀 더 젊고 건강한 상태로 찾아오신 것, 굵은 소금을 빻는 상황 모두 내가 의식적으로 설정한 것이 아니었고 상상한 범주 밖의 내용이지만 어쨌든 나의 뇌가 만들어낸 것이다.


나의 뇌는 나다. 나의 뇌는 나에게 값진 선물을 한 셈이다.

나는 나에게 값진 선물을 했다.

나는 나에게 값진 선물을 받았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나는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도 있고 나에게 무엇이든 선물할 수 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나에게 스스로 감사한다.


할머니 꿈 직전에 약간 지적이고 서구적인 얼굴의 절동미녀(絶洞美女: 동네에 견줄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인; <-상상력이 부족해서 절세미녀 소환은 어려웠던 것 같다)와 함께 영화를 보고 나서 소감을 나눴다. 얼굴이 구체적으로 기억나지는 않는데 붉은색 코트와 무릎까지 내려온 검정색 스커트가 날씬한 체형에 꽤나 어울려 보였다. 나름 괜찮은 꿈이었는데 할머니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거의 잊혀질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