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

주머니 속의 장자방

누미 2016. 11. 24. 15:05

며칠 전에 일본에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 프로 기사와 맞바둑으로 승패를 주고 받으며 호각을 다퉜다는 기사를 봤다. 알파고처럼 4대 1로 압도하지는 못했고 결국 1대2로 패배를 했으니 일본의 기술력이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보다는 역시 한 두 수 정도 아래인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좀 더 알아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알파고는 CPU를 1000개 정도 사용하는 슈퍼컴퓨터인데 반해 일본의 바둑 머신은 겨우 2개의 CPU만을 사용한 초소형 워크스테이션에 불과했다.

굳이 성능을 따지자면 일반 가정용으로 사용하는 중고가형 컴퓨터(I5 CPU)의 5~6배 정도에 불과한 성능이다. 소프트웨어를 더 개선하면 더 낮은 사양의 컴퓨터로도 프로기사와 대등한 수준의 기력을 구현해 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든다. CPU분야에서는 무어의 법칙이 무너진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속적인 하드웨어의 발전과 소프트웨어의 개선에 의해서 십수 년 안에는 그 때의 스마트폰 수준의 연산 능력으로도 인간보다 나은 결정을 하는 소프트웨어가 구현될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는 전망을 해 본다. 슈퍼 컴퓨터가 체스로 인간을 이긴 것이 1997년인데 2016년 현재 이미 스마트폰으로 체스 게임을 하면 인간이 절대 스마트폰을 이길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런 예상이 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단순 계산은 기계가 인간을 완벽히 압도한다. 쌀집 주인이 쌀집 계산기를 쳐보고 그 결과를 굳이 손이나 머리로 검산하지 않고 마트의 캐셔가 바코드를 찍어 계산된 액수를 의심하지 않고 화면에 뜬 숫자만큼 손님에게 돈을 요구한다.

좀 더 복잡한 영역에서는 인간이 나은 판단을 한다. 내비게이션과 번역을 예로 들 수 있다. 익숙한 지역에서 운전을 할 때는 내비게이션보다는 운전자의 판단이 더 나을 때가 많다. 하지만 낮선 곳에서 운전을 할 때라면 내비게이션의 조언은 최선은 아니지만 나름 도움이 된다. 현재 구글 번역 품질은 조악하다. 사람이 하는 것과 비교하면 번역 품질은 천지차이일 것이다. 아직 그런 형편없는 품질에 불과하지만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중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료를 찾을 때 구글 번역 서비스는 가뭄의 단비 같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다만 중요한 정보를 얻기 위한 목적이라면 그 번역 결과가 정확한 뜻인지에 대해 중국어 능통자의 감수가 필요하듯 인공지능이 아직 초보적안 영역에서는 아직 사람의 능력을 대체할 수는 없다.


현재는 인간과 컴퓨터는 장단점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어서 컴퓨터는 보조적인 역할만 하는 수준이다. 어떤 일을 할 때 필요한 자료를 찾거나 계산이 필요할 때 컴퓨터를 이용하거나 완전히 문외한인 영역에서 기초적인 도움을 받는 정도다. 컴퓨터의 보조를 받은 인간의 두뇌는 이전보다 더욱 확장된 사고가 가능하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 능력을 압도하게 된다면 마트 점원이 계산기 화면의 숫자를 의심하지 않듯이 인공지능의 결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개연성이 크다. 단순히 업무를 보좌하는 비서 수준을 넘어서 매번 필연적으로 나보다 나은 결정을 내려 주는 장자방 같은 도구가 항상 내 주머니 속에 들어 있으면 모든 판단을 그것에게 물어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게 되어 인간의 사고 능력이 퇴화 될 위험성이 있다. 사고 능력이 퇴화되면 기계에 더욱 의지할 수 밖에 없고 기계가 내린 판단을 인간이 검증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된다.


인공 신경망의 가장 석연찮은 문제점은 판단의 근거가 되는 중간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알파고가 놓았던 어떤 수는 일견 패착으로 보였으나 결과적으로는 묘수가 되었고, 어떤 수는 결과적으로도 패착이 되었다. 둘 다 처음에는 패착으로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그것이 좋은 수인지 나쁜 수인지를 미리 알 방법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결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소프트웨어 설계자의 악의 또는 소프트웨어 자체의 오류로 인해 잘못된 결정이 나오더라도 그것을 인간이 비판하여 바로잡을 가능성이 낮다는 점은 심각하게 경계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