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정의

누미 2012. 9. 10. 00:57

작년 초에 EBS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강의를 방영했다. 꽤 재미있게 봤었다. 세상사에는 한가지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때는 20살 가을이었다. 그 이후로 철학이란 옛날에 살았던 타인의 주관적인 생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여 공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다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그 강의를 접하고 나서는 남의 생각이 내 생각을 넓히는데 도움이 된다면 한번 쯤 공부할 만한 가치가 있는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 정의는 무엇인가를 완독했다. 대중적이지 않다는 서평이 걱정되긴 했지만 막상 읽어보니 그럭저럭 읽을만 했다. 원서로 보려다가 낙오하고 한글로 된 책을 구입했다. 어지간한 책은 도서관에서 대출하지만 비교적 최근에 나온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에 대출이 거의 불가능했다.

책의 구성은 어떤 윤리철학 이론을 제시하고 그것을 적용할 수 있는 사례들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그 이론을 적용했을 때 엉뚱한 결론이 나는 특수한 케이스를 제시한다. 그 케이스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이론을 소개하면서 이어나가는 식으로 되어 있다.

거의 완벽해 보이던 이론이 사례에 따라 엉뚱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으므로 그 이론은 완벽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된 것이 있다.


나는 그런 이론들을 적용하기 전부터 그 사례들이 정의에 부합하는 것인지 여부를 알거나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일종의 이모티비즘이라고 해도 좋다.(아쉽지만 이 책에는 이모티비즘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책에서 소개한 이론을 적용해서 엉뚱한 결론에 도달한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이미 그 결론이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윤리는 이론으로 풀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어떤 사안은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것 처럼 보인다. 그런 때는 둘 다 옳다고 보지 않을 근거는 무엇인가. 정의는 한가지 뿐이라고 보고 다른 것은 정의가 아니라고 보는 것은 이분법적 사고일 뿐이다. 달려오는 기차의 레일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과 바꾸지 않는 결정은 모두 정의로울 수 있고 어느 한가지 선택만이 정의롭다고 결정해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같은 사건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정의롭다고 여기지만 다른 사람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여길 수 있다.  또는 각자 정의롭게 행동한다고 생각한 사람끼리도 특정 사건에 대해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다. 나라를 지키려는 헥토르의 행동도 정의롭고 친구의 원수를 갚으려는 아킬레스도 정의롭다.


정의감과 양심에 따른 어떤 사람의 행위는 그를 비난하지 않을 근거가 될 수는 있으나 그를 추앙하게 되는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각자의 입장에서 발생한 정의는 충돌할 수 있다. 충돌을 해결 하는 방법은 논쟁 또는 법률이다.

논쟁이나 법적 재판은 논리적으로 해야 한다. 주장의 근거는 이성에 따라야 한다. 결국 자유와 권리, 공리주의의 논리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감정적 대응이나 신앙에 호소하는 것은 논쟁의 근본 규칙을 깨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가지만 옳다고 반드시 정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윤리적 논쟁은 자신이나 상대의 생각에 실수가 있는지 여부만 따지면 되고 상대의 가치관 그 자체에 대한 논파는 필요치 않다.

굳이 한가지 답이 꼭 필요하다면 법에 의한 재판을 하면 된다. 법에도 맹점은 있다. 법이란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이지 누가 옳은지 여부를 밝히는 수단은 아니라고 봐도 된다.

정의에 대한 호기심으로 접근했는데 종착점은 '정의에 대한 정의' 무용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그 책을 소화한 방식이다.


의무론적 윤리관에서는 정의와 정의감을 혼동하기 쉽다. 공리주의적 입장과 충돌할 때는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가 서로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양자의 논의가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현재 행하는 것과 누리고 있는 것에 간섭하고 싶어질 때 정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정의라 믿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 냉철한 비판이 필요하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때때로 타인에게 선동, 기만 당하기 쉽고, 오랜 역사동안 진리라 믿었던 지식은 종종 반증 당하곤 했다. 정의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따르더라도 그것이 틀렸을 가능성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가 필요하다.